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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집.어렸을 때 기억을 소환하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9개의 소설. 거의 대부분이 자전적 소설인 듯하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제목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가 절로 생각이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소설집하면 한, 두개 작품이 뛰어나거나 못하거나 할텐데, 이 소설집은 모든 소설이 맘에 든다. 물론 어떤 소설은 읽으면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소설의 부족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책을 읽으면서 모든 이야기들에 대해 적지는 못했고, 읽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들을 끄적여본다."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천애고아로 시작해서 천애지각,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로 마무리되는, -- 라임이 맞는 듯-- 제목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20대 때는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30대가 되어보니 호남, 영남 우리 나라는 2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남과 북의 분단이 육체적 단절이라면 영남, 호남은 정신적 단절이랄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그 때는 몰랐다. 지금은 누구의 농간 때문이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왜 아직도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한 시대가 저물어야 좀 나아질까?대학시절 내 동기들은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이었다. 그 때는 저런 것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학교이었기에. 그런데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그런 것들이 보이더라. 같은 잘못을 해도 전라도 사람이 좀 더 불이익을 받게 되는, 그리고 그에 따라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이것은 잘못된 확증편향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허황된 이야기가, 그리고 서민의 불만을 서로의 싸움으로 해소시키려는 정치꾼들의 협잡이 아직도 통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는데 하면서도 아직도 그런 상황이 남아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인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을 읽노라면 아직도 저런 상황인 것에 대해 짜증이 확 밀려온다. "뉴욕제과점". 작가는 뉴욕제과점 막내아들. 난 서문제과 조카이다. 아마 내가 태어날 때부터 큰이모가 서문제과를 했었으니, 지금은 서문우동으로 바뀌어 여전히 하고 있으니 꽤 오래된 빵집이다.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그 집 빵과 우동을 엄청 먹었다. 어머니가 주중 낮시간에 도와주시러 가는 바람에 빵이나 우동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조카로서 조금이나마 혜택을 받았다고 해야할까. 이 글을 보면서 서문제과와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떡보다 빵이 더 좋다는 말. 제과점 조카라서 그렇다는 말. 그런 것들이 떠오르는 소설이다."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소설을 읽으면서, 어라 애기똥풀이 나오네, 나 이거 아는데, 그저 아는 식물 이름 하나 나온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방금 전에 읽었던 문장이 계속 따라다녔다. 혹시 하는 생각에. 이 소설을 중간 정도 읽다보니 왜 아기똥풀이 나왔어야 했는지, 뒤늦게야 깨달았다. "제비 맞으러 나온 애기똥풀이 하늘 높이 꽃잎을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그 줄기를 잘랐다면 아기 똥 같은 노란 즙이 배어나왔겠지. 따가운 그 노란 즙이 예정더러 아프지 말라고, 아프지 말라고 달래주었겠지. 그 아기 똥 같은, 따가운 노란 즙이 예정의 아픈 마음을 살살 만져주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예정은 그만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pp.183-184)이 아저씨 정말 못말리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럴테지만 정말 소설 속에 나오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옛날에는 왜 그렇게 맞고 다녔을까.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때렸을까. 선생님들이 훈육을 할 수 없어서 요즘 애들이 버릇이 없다고 하던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옛날을 떠올려보니 그래도 때리고 맞는 것은 아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누군가의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체벌을 가한다는 것은, 역시 아니다. 어쨌든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어야지.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기호 작가의 소설 몇 점이 떠오른다. 작가들은 어렸을 때 모두 뭔가 품고 살았나보다. 어찌 그리 글을 맛깔나게 쓰는지. 한편 한편 읽는 것이 즐거운 책이다. 그리고 사투리가 나올 때는 읊조리면서 읽으면 운율이 살아난다. 뭐랄까, 그냥 읽혀진다고 할까. 추억돋는 책이다.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의 내부에서 새어나온 가장 따스한 빛을
살갗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_한강(소설가)

등장인물의 기억이 개인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연결돼 역동성을 확보하는 견고한 시각이 느껴진다 라는 평을 받으며 제3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의 두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를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다. 다양한 레퍼런스와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를 엿볼 수 있는 첫번째 소설집 스무 살 (2000)과 작가적 역량이 극에 달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2005) 사이에 놓인 두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2002)는 김연수에 따르면 처음으로 소설 쓰는 자아가 생긴 작품 꾿빠이, 이상 과 더불어 소설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본 시기 에 쓰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에 이르러 오로지 이야기만으로는 소설을 구성해보려는 작가적 자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의 배경이 ‘80년대 김천’이라는 점 때문에 김연수의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집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자전소설’이라는 테마로 쓰인 「뉴욕제과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자연인 김연수의 개성과 사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작가로서 만들어낸 이야기로만 구성 되어 있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 _007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_047
뉴욕제과점 _077
첫사랑 _107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_135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_163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_201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_227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_257

해설|정선태(문학평론가)
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 _285

작가의 말 _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