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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쎄인트의 冊이야기 2017-117  【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_김기택 (지은이) | 다산책방    SNS에서 우연히 눈에 띈 포스팅입니다. “모 대학교수는 자신에게 오는 시집들은 모두 쓰레기라고 한다. 그 쓰레기들 버릴 때 우리한테 주시구려.” 포스팅을 한 사람은 개인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이 몇 가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군요. 우선 그 대학교수는 시(詩)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인가? 시를 써보기라도 했나? 아마도 SNS에서 발설한 듯한데, 그러기 전에 출판사(시인이 직접 보낸 경우도 있겠지만..)에 책을 보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를 쓰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책 한권을 만드는 일이 어디 장난인줄 아십니까? (나는 책 출간에는 참여하지 못했어도, 시는 좀 써봐서 쬐끔 압니다) 그 교수 머릿속엔 뭐가 들었으려나?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려나...속 거북함과 함께 급 궁금점이 상승됩니다.      문학소년 시절에 시를 몇 편 외우고 다녔지요. 그래야만 어디 가서 문학소년 시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나이는 어느 결에 소년에서 청년을 지나 중년이 되었습니다. 희한 한 것은 살아오면서 새록새록 그 시어(詩語)들이 말을 건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를 위로해주고, 나를 자극시켜주고, 감성수치도 올려주고, 힘을 줄때도 있습니다. 간혹 그 시절로 돌아가는 회상의 열차도 태워줍니다. 문학작품은 그저 줄거리만 생각나게 해주지만, 시는 때로 통째로 다가옵니다.    “삼십 년 가까이 시를 써오면서 시에 많은 빚을 졌다. 가진 것도 없는 데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 많은 나에게 시가 찾아와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이 책의 지은이 김기택은 전업시인이 아닌, 직장인 시인입니다. 지은이는 프롤로그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는 말 속엔,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군요. 혼자만의 풍요로운 시간,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는 반가움과 즐거움, 삶을 압박하고 들볶는 괴로움을 이상한 기쁨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현실에선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도 시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즐거웠다고 고백합니다. “시는 지겹고 지루하고 틀에 박힌 일상이나 닳고 닳도록 보아서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들을 두근거리며 이제 막 처음 보는 것 같은 신선한 ‘첫 경험’으로 하게 해주었다. 답답하고 좁은 시야와 숨구멍을 확장시켜주었다.”    이 책은 지은이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임명한 문학 집배원이 되어 시인이 평소에 즐겨 읽거나 좋아하는 시에 짤막한 감상을 붙여 배달한 것을 펴냈습니다. 시인답게 내용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성했네요. 봄기운이 나거나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시, 여름의 강렬한 햇빛처럼 열정이나 힘이 드러나는 시, 차고 신선한 가을바람이 느껴지거나 삶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하는 시, 겨울의 추위에 맞서 고통을 견디는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시들을 모았습니다.     지은이가 추천한 50여 편의 시중에서 하나 골랐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그의 사진」이란 시입니다.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 마르기 위해서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변함없이 웃고 있지만 실은/ 남아 있는 물기를 거두어들이는 중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그림자처럼/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사진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사진을 보며 거실에 들어서는 날들. 그 고요 속에서/ 겨울 열매처럼 뒤늦게 익어가는 것도 있으니/ 평화는 그의 사진과 함께 늙어간다// 모든 파열음을 흡수한 사각의 진공 속에서/ 그는 아직 살고 있는가/ 마른 잠자리처럼 액자 속에 채집된/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 그러나/ 파도 소리 같은 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웃고 있지만/ 액자 위에는 어느새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볕이 환하게 드는 아침에는 미움도/ 연민도 아닌 손으로 사진을 닦기도 한다/ 먼지가 덮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걸레가 닦으려는 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떻습니까? 시가 너무 어렵나요? 쉽진 않지만 대충 분위기 파악은 되셨지요? ‘사진 속 주인공’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 마르기 위해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는 연과 먼지가 왜 덮이는지(가리고 있는지) 걸레는 무엇을 닦으려 하는지로 마무리되는 이 시는 마음을 차분히 쓸어줍니다. 비록 아직 이승에 있지만, 내가 보고 싶다고 휘리릭 달려가서 볼 수 없는 사람도 ‘사진 속 그 사람’이나 마찬가지겠지요. 지은이는 이 시를 소개하는 글을 쓰며 ‘이별은 투명인간과 같이 사는 것’이라 붙였네요. 투명인간이라? 그는 나를 보고 있고, 나는 그를 볼 수 없다?     #다시시로숨쉬고싶은그대에게 #시배달 #김기택 #다산책방 #나희덕      

「사무원」 시인, 김기택이 삼십 년 만에 내놓은 첫 산문집 1989년 한국일보로 등단하여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의 시집으로 세상의 소외된 모든 것들의 목소리와 풍경에 주목해온 김기택 시인이 다산책방에서 자신의 첫 산문집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를 펴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서른이 넘어 등단하여 시 쓰기와 직장 생활을 이십여 년간 병행해온 김기택 시인은 밥벌이에 지치고 세상에게서 외면당한 이 땅의 모든 존재에 귀 기울여왔다. 소외된 모든 것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날카로운 관찰력은 그의 첫 산문집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에 녹아들어 더욱 진솔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는 언제든지 부르면 다가와 잃어버린 것들을 채워주고 고단한 시간들을 위로해준 것은 지금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에 가려져 있던 빈약하기 짝이 없는 유년시절의 기억이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삶에 무늬 진 이야기들은 시를 가슴으로 읽게 해주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주며, 꽉 막힌 숨통을 탁 트이게 만들어 지리멸렬한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꿔 보게 해줄 것이다.

프롤로그 밥에 붙들려 꽃 지는 것도 몰랐다

제1부 탄력의 통쾌함 _ 봄에 읽는 시
봄, 가벼움의 본능이 깨어나다 황인숙 「조깅」
맛있게 우는 법 문정희 「흙」
사랑의 리듬과 시의 리듬은 심장에서 온다 차주일 「두 번째 심장」
웃지 않으면 죽는다 이현승 「간지럼증을 앓는 여자와의 사랑」
내 몸은 자연이고 사물이다 송재학 「사물 A와 B」
동네 이발소는 왜 없어졌나 박형권 「우리 동네 집들」
몸, 문명이 침투하지 못한 생태계 최승호 「몸의 신비, 혹은 사랑」
내 마음이 듣고 싶은 말 천양희 「참 좋은 말」
그리운지도 모르는 간절한 그리움 장석남 「살구꽃」
밥맛은 살맛이다 논두렁 「이덕규」
풀의 숨은 이름 찾기 고형렬 「풀이 보이지 않는다」
탄력의 통쾌함 손택수 「스프링」
추억은 나의 미래다 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

제2부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_ 여름에 읽는 시
바람 속에는 목소리만 남은 이들이 산다 김경주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상처를 벼려 쇠로 만들다 조정권 「금호철화」
이 얼굴 이 이름이 너니? 김광규 「나」
먹지 않고 사는 방법 문혜진 「독립영양인간 1」
피가 끓을 때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이원 「오토바이」
추억은 나를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둥근 탄력의 마법 장석주 「축구」
어머니 안에 갇힌 어머니 이경림 「부엌 -상자들」
이게 뭐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경이로움」
노래하고 죽을래 그냥 죽을래 최정례 「웅덩이 호텔 캘리포니아」
흐르는 시간에 익사당하지 않으려면 진은영 「물속에서」
우물은 지난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한성례 「고향우물」
물방울은 어떻게 송곳으로 단련되는가 정병근 「물방울, 송곳」

제3부 사랑에는 기교가 필요하다 _ 가을에 읽는 시
냄새로 세상 읽기 윤의섭 「바람의 냄새」
사과가 말을 걸어오게 하는 법 김혜순 「잘 익은 사과」
지나간 일을 되돌리는 방법 김승희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
반품 불가 교환 불가 환불 불가 이윤학 「버려진 식탁」
헐거운 공간, 꽉 찬 고요 김태정 「달마의 뒤란」
노래 속의 육체, 육체 속의 노래 김소연 「이것은 사람이 할 말」
사랑에는 기교가 필요하다 박형준 「사랑」
지독한 외로움 이면우 「거미」
다 이야기하면서 감추기 김두안 「그림자 속으로」
이별은 투명인간과 같이 사는 것 나희덕 「그의 사진」
내 안에 언제 고통의 항체가 생겼을까 박라연 「고사목 마을」
나의 은신처 곽효환 「지도에 없는 집」
맛있고 향기로운 슬픔 제조법 조은 「등 뒤」

제4부 난폭한 슬픔 길들이기 _ 겨울에 읽는 시
맹수의 피가 흐르는 꽃, 동백 송찬호 「관음이라 불리는 향일암 동백에 대한 회상」
나무는 제 삶을 몸에다 기록한다 함민복 「원(圓)을 태우며」
세상의 모든 길은 나무를 닮았다 고재종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난폭한 슬픔 길들이기 마종기 「내 동생의 손」
배고픔이라는 별미 신덕룡 「만월」
삶의 안하무인과 횡포와 변덕에게 김경미 「오늘의 결심」
벽으로 만든 문 박주택 「국경」
사소한 편리 뒤에는 목숨을 건 속도가 있다 장경린 「퀵 서비스」
절망과 체념의 춤 김정환 「절망에 대해서」
폭력의 기억을 놀이로 만들기 유홍준 「가족사진」
마음은 죽어도 몸은 죽을 수 없는 어머니 정철훈 「병사들은 왜 어머니의 심장을 쏘는가」
불쌍한 몸보다 더 불쌍한 마음 김윤배 「굴욕은 아름답다」

에필로그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