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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에 띄어 얼른 집어 들었는데 읽다 보니 어린이를 위한 책이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어린이용은 대부분 어려운 내용도 쉽게 설명하고 두께도 얇아 읽기에 편하다. 중요한 것만 쏙쏙 뽑아 알려 주는데 이오덕 선생이 말한 아름다운 우리말을 많이 써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만화로 된 어린이용 자본론 을 한 번 읽어 보라. 내 말이 틀린지!
조선 성종 때 사람 최부는 추쇄경차관(도망친 노비를 찾고 관리를 감찰하는 직책)으로 제주에서 일하던 중 아버지 상을 당한다. 급히 고향 나주로 가다가 풍랑으로 표류하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해적까지 만나 매맞고 가진 걸 다 뺏기기도 한다. 어찌어찌해 닿은 곳이 중국 절강성. 그런데 이번엔 왜구로 오인 당한다. 필담으로 겨우 조선의 관원임을 밝혀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성종의 명으로 이 과정을 기록해 왕에게 바친 것이 바로 이 표해록이다.
당시에는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요동을 거쳐 황제가 있는 북경으로 가는 것이 공식 외교사절이 다니는 길이었다. 이에 따라 온갖 물산이 넘치는 경제 중심지 중국 양자강 유역을 여행한 조선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가깝게는 고려때 까지도 우리 안마당 같던 서해와 산동반도 일대 중국 연안지역이 우리 역사에서 멀어진 까닭이기도 하다. 표해록이 귀한 이유는 조선 선비가 바로 이 지역을 지나며 풍광이며 문화, 음식, 제도 따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인데 거의 유일한 기록인 듯도 하다. 유명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 엔닌(일본 승려)의 입당구법순례행기 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여행기에 꼽힌다고도 한다.
유난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최부가 거지꼴로 중국 절강성 연안에 닿으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칼을 들고 몰려와 가진 걸 다 뺏고 목을 베려 했다.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며 애원하니 인근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했다. 틈을 보아 재빨리 땅에 내려 도망쳤다.
나중에 들으니 최부 일행 마흔 두 명이 오자 바다를 지키는 수군 대장이 "왜구의 배 열 두척이 습격을 하러 왔다!"고 먼저 보고를 하고 그 증거로 최부 일행을 죽여 공을 세우려 했던 것. 이렇게 거짓으로 자신의 실적을 높이고 승진에 목을 매던 것은 명나라의 고질병이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같이 싸웠던 진린도 처음에는 사사건건 훼방을 놓다가 목 벤 왜군 머리를 양보하자 입이 쩍 벌어 졌다는 기록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디나 이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라가 망하려면 이런 놈들이 득세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충신을 내치는 풍토가 만연한 것이 공통점이다.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도망칠 자들이 이들이라는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명군은 왜 그렇게 왜구의 머리에 집착 했을까? 사실 왜구는 우리 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큰 골치덩이였다. 갑작스럽게 해안지방에 출몰해 노략질하고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기 때문. 1533년(가정31년) 한 무리의 왜구들이 동남해안을 따라 절강, 항주, 안휘성 등 강남지방을 차례로 휩쓸면서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왜구 무리들은 80여 일동안 약 4천여 명의 농민들을 살해했다. 당시 왜구들의 잔인한 행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될 정도였다.
"곡식창고를 약탈하고 민가에 불을 질렀으며 백성들을 죽였다. 시체와 피가 산과 강을 이룰 정도였다. 어린 아이를 기둥에 묶어놓고 끊는 물을 끼얹는 것을 놀이삼아 했으며 임신부를 보면 뱃속에서 태아를 끄집어내는 등"
왜구들의 잔학상이 이와 같았다. 2차대전, 남경학살 때도 일본군은 변한 것이 없었다.
명은 여러 차례 토벌하려 했지만 바다를 막는 정책으로 수군을 등한시 했기에 이기기는 커녕 연전연패, 왜구는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영화 동방불패 에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만큼 왜구는 치고 빠지는 전투력 이 높았다. 이른바 북로남왜(北虜南倭). 일설에는 이 해적떼가 동남아를 거쳐 인도까지 원정을 다닐 만큼 항해술이 뛰어 났다고 하는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과 중국을 먹고 인도까지 정복하겠다는 망상을 품었던 건 바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니 왜구를 소탕했다면 군인으로서는 그야말로 로또를 뽑은 것과도 같은 셈. 거기다 적의 머리를 베어 증거까지 내민다면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었던 것. 그러니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니어서 말도 할 줄 모르는 조선인 몇 명 죽이려 했던 건 썩어 빠진 명나라 관료제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지도 모른다.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던 명나라에 홀연히 영웅이 등장한다. 척계광(戚繼光). 절강지역의 군사 책임자로 부임한 그는 몇 번의 패배 후 왜구의 전술을 깊이 연구, 대비책을 세우고 군사를 훈련한다. 이윽고 강군이 된 척계광의 군대는 연전연승, 적을 섬멸하여 이 지역에서 왜구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 군대의 이름이 바로 척계광의 군대라 하여 척가군(戚家軍).
척가군은 조국과 백성을 위하여 싸운다는 결의에 차 있어 그 사기와 전투력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엄격한 규율로 유명했는데 어느 날 집합 명령에 정렬한 장병들, 이때 큰 비가 내렸다. 곧 해산 명령이 내려질 줄 알았으나 명령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아침 일찍부터 한낮까지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고 전원이 부동자세 로 꼿꼿이 서 있었다. 그 지방 사람들은 이처럼 엄한 군기를 가진 이 부대를 척가군(戚家軍)이라 불러 칭찬했다. 마치 송나라 악비(岳飛)의 악가군(岳家軍)을 보는 듯. 이랬으니 왜구를 무찌를 수 있었던 것. 이것이 1550년대 중반의 일. 표해록을 지은 최부는 이보다 약 80년 앞서 절강 일대를 둘러 본 것이다.
표해록, 재밌다!
세계 3대 중국 견문록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작품입니다. 기행문으로서의 높은 가치를 인정 받고 있으며, 당시 중국과 아시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 사람 최부는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전남 나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서남해에 표류하던 그는 명나라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 길에서 만난 다양한 문화와 경험들을 기록해놓은 것이 표해록 입니다.
작가는 최부가 쓴 원문을 다듬어 전하면서 그 과정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와 주변 나라들의 상황에 대한 정보들을 담고 있어 우리의 역사를 더 잘 알게 합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기행문이라는 점에서 다른 기행문들과 차별화되는데,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았던 외국인의 눈이 아닌 조선인의 눈으로 본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글을 열며
-조선 사람이 남긴 세계적인 여행기 표해록
바다에서 길을 잃다|정월 30일―윤정월 28일
대운하를 따라|윤정월 29일―2월 23일
북경을 향하여 북으로, 북으로|3월 17일―4월 23일
조선으로, 고향으로|4월 24일―6월 4일
글을 맺으며
-옛 조선 사람의 마음과 오늘날 한국 사람의 마음
해설
-조선의 참선비, 열린 눈으로 드넓은 세계의 메신저가 되다 /진재교·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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