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삼국 통일 전쟁 전 당은 돌궐, 고구려와 동아시아의 패권을 겨루고 있었으며 신라와 백제는 한반도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은 여러 차례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신라는 백제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결국 삼국 통일 전쟁은 돌궐, 고구려, 백제, 왜의 연합으로 고립된 신라와, 고구려를 복속시켜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고자 했던 당이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먼저 660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켰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배제 사비성이 함락한 지 3년이 663년 왜가 지원군을 보냄으로써 백강 전투가 일어났다. 약 2만 7천 명의 병사를 태운 천여 척의 배가 왜를 출발하여 백강 하구에 도착하였다. 당의 장군 유인궤는 부여에 정박한 전함 170척을 이끌고 백강 입구(오늘날 금강 하류로 추정)로 내려가 전열을 구축하였다. 바다와 접한 백강 입구에서는 당군과 왜군이, 육지의 주류성에서는 신라군과 백제 부흥군이 이틀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러나 백강 전투에서 왜군이 패배하였고 백제 부흥운동은 지도층의 내분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백강 전투에서 패배한 왜는 백제 망명자들의 도움으로 서부 곳곳에 산성을 쌓아 나당연합군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백제 멸망에 이어 668년에는 고구려가 멸망하였다. 백제 멸망에서 고구려 멸망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정세 변동은 결국 신라의 존립을 둘러싼 나당전쟁으로 이어졌다. 20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는 엄청난 군사력이 집중된 전쟁이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2개 국가가 멸망하고 대규모의 주민이 이동하는 격변이 일어났다. 이러한 일련의 격랑 속에서 전쟁에서 패배한 백제 유민들과 고구려 유민들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과 승자인 신라와 당의 서로 다른 야욕은 국제 정세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670년 7월 즈음부터 신라와 당은 백제 부흥군에 대한 입장 차이로 서로 간에 불신이 극도로 높아지다가 마침내 본격적인 나당전쟁이 시작되었다. 신라는 671년에 소부리주를 설치함으로써 옛 백제 땅을 거의 다 장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 당과 치러야 할 전쟁의 주 무대가 자연스레 한반도 북부와 중부 지역으로 옮겨졌다. 신라도 이 점을 잘 알아서, 672년에 주장성(지금의 남한산성)을 축조하고 이에 대비하였다.
한편 670년을 전환점으로 신라가 당에 공세를 취한 것은 서역의 정세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660년부터 당의 군사력이 한반도로 집중되면서 빈틈이 생긴 서역에서는 곧바로 당에 맞서기 시작하였다. 660년 텐산 지역에 있던 서돌궐의 여러 부족이 반기를 들었고, 661년에는 철륵이 서역에서 당에 도전하였다. 다급해진 당은 662년에 한반도에서 군대를 빼내 설인귀 등을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역은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는데, 그 중시은 토번이었다. 토번은 663년 이후 토욕혼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당은 토욕혼이 연이어 군사를 요청했음에도 한반도에서 쉽사리 군대를 빼내지 못하였다. 게다가 665년에는 서돌궐도 내분을 청산하고 당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고구려의 부흥운동이 전개되던 랴오둥 그리고 한반도에서 당의 군사작전이 장기화되자, 토번은 669년 9월부터 실크로드 지역에 대한 공세를 전개하여 670년 7워에는 설인귀의 10만 대군을 궤멸시키고 안서 4진을 장악하였다. 이렇게 서역에서의 전황이 급박해지자 당의 주력군을 서역으로 이동시켰고, 신라와 고구려 유민들은 대당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670년 안동도호부를 랴오둥 지역으로 옮긴 뒤 한반도 북부 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축소된 당은 서역의 위기를 수습하고 다시 반격에 나섰다. 671년에 당은 랴오둥의 안시성에서 고구려 유민들을 격파하여 한반도로 진공을 시작하였다. 고구려 유민의 항쟁을 진압하고 한반도 북부를 차지한 당군은 신라에 대하여 적극적인 공세를 폈으나 오히려 신라군에게 결정적인 승리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9월이 되면서 설인귀는 천성(임진강 하류 지역)을 공격하였다. 설인귀는 신라의 장군 문훈은 이를 격파하여 1400여명의 목을 베고 병선 40여 척을 빼앗았으며 말 1000여 필을 전리품으로 얻었다. 당군의 패전은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이근행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육로로 남하하면서 9월 29일 매초성(양주 대모산성 혹은 전국리 토성)에 주둔하였는데, 설인귀가 천성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군수품 보급 등에 큰 어려움이 생겼다. 이근행의 대군은 결국 신라군의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참패하였는데, 이때 신라는 말 3만여 필과 수많은 병기를 전리품으로 얻는 승리를 거두었다. 나당 전쟁의 승기를 매초성 전투에서 잡은 셈이었다. 그 뒤에도 신라와 당 사이에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졌으나, 전쟁의 주도권은 이미 신라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듬해 676년 11월, 설인귀가 거느린 수군이 기벌포에 대한 최후의 공세를 펼쳤다. 신라 장군 시득이 수군을 거느리고 이에 맞섰다. 신라군은 처음 전투에서는 패배하였으나, 이후 크고 작은 22회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4000여명의 목을 베었다. 이로써 당은 신라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안동도호부는 다시 랴오둥으로 축출되었다.
나당 전쟁의 종식에는 676년 이후 급박해진 당과 토번의 전쟁, 토번의 동맹 세력인 서돌궐의 재흥 등이 중요한 국제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 673년 12월 토번의 배후 조종을 받은 텐산 지역의 여러 부족이 당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당은 소정방 등을 파견하여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나당 전쟁은 소강 상태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675년 1월에 토번의 평화 사절이 장안에 도착하고 2월에 유인궤가 입진강 유역에 있는 칠중성을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한반도 내에서 당군과 신라 사이에 전쟁이 재개되었다.
이와 같이 서역에서 토번이 어떻게 움직이냐에 따라 나당전쟁의 양상도 여향을 받았다. 특히 설인귀와 유인궤, 이근행 등은 한반도 전선에서 복무하던 중 때때로 토번과의 전쟁에 투입되었는데, 이는 신라·당의 전쟁과 당·토번 전쟁의 전쟁이 서로 연동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따라서 나당전쟁은 매초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의 승리로 끝났지만, 한편으로는 당이 토번에 총공세를 취하기 위해 한반도 내의 병력을 서역으로 이동시켰다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삼국통일전쟁은 국제적으로 당이 660~670년 초반까지 한반도에 군사력을 집중한 결과 서역과 북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토번의 성장, 돌궐의 재등장을 초래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북방과 서역의 동요는 다시 동북방에 영향을 주었으니, 696년 동북방에서 거란 이진충의 반란을 계기로 말갈과 고구려 유민이 독립하여 698년에 발해가 건국되었다. 한편 680년 한반도에서 세력 재편이 끝났을 때 동아시아의 정세를 보면, 당을 중심으로 서역에서는 토번이 세력을 확대하고 북방에서는 동돌궐이 다시 일어났다. 또 동쪽에서는 신라 및 왜가 당과 교섭을 단절한 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후 토번과 돌궐은 주로 반당적 태도를 보이는데 반하여 동아시아의 사정은 차츰 달라졌다. 신라는 당과의 통교 이후 시종 우호적이고 밀접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였다. 일본 역시 당의 율령 체제를 수용하면서 당에 우호적인 입장이었고, 발해는 한때 군사적 충돌까지 갔으나 기본적으로는 당과 화평 관계를 유지하며 당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역사의 현장과 함께 읽는 한국사
대학에서 역사 수업을 듣다 보면 하게 되는 활동이 있다. 바로 답사 이다. 역사는 인간의 생생한 활동이 기록된 학문이기에 관념적인 이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답사를 하게 된다. 현장 검증 우리 역사 는 직접 답사를 할 여력이 안 되는 독자에게 유용한 역사책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우리의 역사는 반만 년의 역사다. 그만큼 어느 곳을 가도 역사의 현장이 아닌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 책은 좀 더 많은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짚어보기 위해 쓰여졌다.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5명이 각각의 전공 분야에서 번득이는 통찰력과 재미난 글솜씨로 역사를 풀어낸다. 크게 건국 , 전쟁 , 민중운동 , 독립운동 , 격동 이라는 특정한 테마를 설정해 한국의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다룬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진주와 고부 민란 그리고 전태일의 분신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론의 영역으로 끌어내고 있다.
삶의 현장에서 걷어 올린 역사의 진실
1 건국의 현장
고구려, 웅장한 역사가 시작되다
백제는 마한을 누르고, 신라는 진한에서 일어나다
서울, 600년 역사의 시작
대한제국의 성립과 경운궁
2 전쟁의 현장
멸망과 통일의 기로, 황산벌과 매초성
몽골에 맞선 고려의 민중
조선 최대의 사건, 임진왜란
서양 오랑캐, 강화에 총을 들이대다
3 민중운동의 현장
1862년 진주, 농민의 분노가 폭발하다
고부, 변혁의 들불로 타오르다
작은 섬 암태도의 저항
평화시장에 타오른 불꽃, 전태일
4 독립운동의 현장
유생과 머슴새가 쌍봉을 날다
안성, 3·1운동의 기억
‘빼앗긴 들’, 서울의 6·10만세운동
학생운동의 고향, 1929년 광주
5 격동의 현장
학살과 항쟁의 섬 제주─4·3항쟁
4월혁명과 마산
죽음을 넘어 어둠을 넘어 우뚝 선 ‘해방광주’
6월항쟁의 구심, 명동성당
참고문헌
찾아보기
- Total
- Today
- Yesterday
- 매3비 2 매일 지문 3개씩 푸는 비문학 독서 수능기출 매3비 연계 훈련편 (2017년)
- 더 이상 무엇이
- [대여] [세트] 보통연애
- [고화질] 토모에 마미의 평범한 일상 02권
- 유년의 종로
- 퀀텀 교수법
- 뒷북치는 콤플렉스
- 재미있게 읽는 그날의 역사 5월 23일
- 2017 공인단기 공인중개사 합격노트 부동산세법
-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 내일은 실험왕 21
- The Hunger Games #3 : Mockingjay (영국판)
- 빨간 목줄의 파로
- 빈칸백서
- 다들 하고 계십니까 (전3권/완결)
- 피치 Pitch
- 지금 지구에 소행성이 돌진해 온다면
-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8
- 특별하게 쫑내기 특쫑 문제기본서 중등 수학 1-1 (2017년)
- 우리 아이 처음 읽는 하늘빛 성경 동화 구약 A세트
- 우묵배미의 사랑/어두운 기억의 저편/우리들의 조부님/포구의 황혼/노래에 관하여 외
- 너는 아직 달콤했고 나는 아직도 쓴맛이 난다
- 현장 검증 우리 역사
- 큐브수학S strong 발전 5-1 (2017년)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컬렉션 세트
-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 오만원 재테크
- 리더의 아침수업 + 삼성의 CEO들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 Leonard Cohen (레너드 코헨) - The Complete Studio Album Collection (Limited Edition)
- [대여] 명언의 숲에서 만난 인생의 나침반 50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