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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 평전

kljhdiu 2024. 2. 12. 09:12


어느 영화에선가 "나 약산김원봉이요"하는 모습에 매료되어 읽어본 책이다.약산 김원봉! 조국의 자유를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고 목숨을 바쳐서 살았던 사람.하지만 해방 후 조국은 그를 불편한 존재 정도로 인식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다.남한에서 버림받고 월북하였지만, 북한도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후에는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후대를 사는 우리는 약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대부분 독립운동가의 비참한 말로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면 씁슬한 마음이 든다.반면에 친일파 후손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독립군 때려잡던 박정희가 대통령을 하고,전범기업의 후손들이 우리나라에서 재벌이 되고...아직도 이 땅은 해방이 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최고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선생의 최초의 평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일제 관헌이 그 이름만 들어도 오금을 저렸다던 의열단을 창단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한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이다. 하지만 광북 뒤 환국한 조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위협과 모략이었다. 그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했던 노력들은 좌우의 이해관계에 의해 분열되고, 입지가 축소 되었으며 이승만 세력에 빌붙은 친일 세력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었다.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했지만 남한과 북한 정권으로부터 반역자 취급을 받고 철저히 배척되었던, 그래서 의열투쟁과 관련된 기록을 제외하고는 자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던 그를, 저자가 30여년 동안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모아 가장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시 재조명했다.

의열단 창단의 의의,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집필배경, 조선의용대 창설과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된 실질적인 동기 그리고 월북과 그의 의문의 죽음 등 역사적인 사실과 함께 그 이면에 숨긴 진실 또한 있는 그대로 비춘다. 또한 일본 정보기관의 기록이나 증언록 등을 국내에서 처음 수록해 공개한다. 대한민국 광복 60여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제기하며, 기존의 어떤 책보다 약산 김원봉을 심도있게 다룬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이라 할 수 있다.


책머리에
약산 김원봉 회견기(가상)

제1장
‘떡잎’부터 남다른 어린 시절
체 게바라와 호세 리잘
‘그림자’ 같은 사나이
밀양에서 열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망국소년이 된 김원봉
전홍표 교장과 평생동지 윤세주 만나
독립운동의 묘판, 밀양
평생 동지들 만나 의기투합하다

제2장
조국독립의 꿈을 그리며
무장투쟁의 꿈을 안고 중국으로 망명
파리강화회의에 자객 보내
비폭력 3.1운동 소식 듣고 실망
무장부대 대신 폭렬투쟁론 정립
신흥무관학교 입교, 폭탄제조법 배워

제3장
폭렬투쟁의 의열단 창단
‘의열단’이라는 고유명사
혈연적 운명공동체 ‘의열단’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

제4장
식민통치 기관을 파괴하라
폭렬투쟁에 생명 걸어
부산경찰서 폭파 작전
밀양경찰서 폭파 작전
조선총독부 폭파 작전
자금 조달과 폭탄 반입의 어려움
아나키즘에 매료되기도
아나키스트 유자명과의 만남
의열단, 임시정부와는 거리 두다
소련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 지원받아
일본 육군대장 처단 시도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의열단선언은 어떤 내용인가
의열단 총회 열어 결의 다짐
‘불멸의 문헌’에 대한 역사적 평가

제5장
황포군관학교 입교 전후
의열단의 시련과 세력 확장
임시정부에 실망한 세력 의열단 가담
의열투쟁자금 마련에 고심
김지섭의 이중교 투탄 의거
확고한 민족주의 신념
황포군관학교에 입교
유오한국혁명동지회 결성
군관학교에서 얻은 인적 자산
김성숙의 김원봉 회고담

제6장
중국혁명전선에 서다
의열단의 개조운동
조선민족혁명당으로 발전
무창혁명청년회 결성
장개석의 북벌에 참전
살육의 현장을 뒤로하고 상해로
남창봉기에 직접 뛰어들어
광주봉기에는 참가하지 않아
시련을 딛고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발돋움

제7장
독립운동진영 통합운동에 앞장서다
공산주의 이론가 안광천과의 만남
상해에서 새 활로 모색
대표자대회 열어 강령 · 슬로건 채택
창립 9주년과 3.1운동 10주년 성명
레닌주의정치학교 개설
사회주의사상에 깊이 빠져들어

제8장
독립군전사들의 용광로 조선혁명간부학교
세계 대공황과 파시즘 체제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우기까지
‘남의사’통해 중국정부로부터 재정 지원 받아
황포군관학교 동기생들의 협력
남경 교외 탕산에 훈련소 개설
조선혁명간부학교 운영에 열정을 바쳐
치열한 혁명계급론 분석
백범 김구의 격려 방문
졸업생들, 특수임무 띠고 적 후방으로
혁명음악가 정율성 배출
독립운동진영의 지도자로 우뚝 서다
왜노 몰아내는 조선독립의 역군이 돼라

제9장
사랑과 혁명의 합주곡
북경에서 만난 여성 혁명가 박차정
젊은 혁명가들의 사랑과 조국해방투쟁
노신과 허광평의 사랑과 혁명운동
남경조선부녀회 조직, 운영지도
불꽃처럼 살다간 소피아 코발렙스카야처럼

제10장
민족혁명당 창당 총서기에 취임
국제정세의 변화를 지켜보며 통합정당을 지도
단일대당 운동에 임시정부는 불참
민족 · 민주혁명이념 제시
당권 장악했으나 이청천 계열 이탈
민족혁명당보 발행에 심혈을 기울여
민족혁명당 창당의 ‘실천적 의의’
중일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

제11장
조선의용대 창설, 총대장이 되다
중일전쟁, 한국독립 절호의 기회
조선의용대 창설
기독청년회관에서 결성식 가져
의용대원들의 회고
핵심대원들로 의용대 편제
일본인 반전운동가들과 연계투쟁
한국광복군 창설에 자극제 역할
강도 일본을 타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
기관지 조선의용대통신 발행
후방지역 전지공작에 투입
중국 문인 곽말약과 김성국의 회고
의용대원 김학철의 회고
의용대원 유자명의 회고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 결성

제12장
조선의용대의 활동과 화북이동 전후
조선의용대의 선전공작과 유격전
모든 반일 역량을 단결시키자
다양한 대적선전활동 전개
일제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
일본 반전단체의 축하 메시지
조선의용대의 미래 활동 지침
조선의용대 주력 화북으로 이동
중국공산당, 김원봉의 화북행 차단
중국인 사마로의 증언
망명자 가족 생계유지를 위해
연안송을 지은 정율성은 조선의용대원

제13장
임시정부 군무부장에 취임
국권침탈기 무력항전의 전통
한국광복군의 결성과 성격
한국광복군의 역할과 사명

제14장
좌절과 민족해방의 중경 시절
잔류대원 이끌고 중경으로 이동
장개석 정부의 통합 압력
임시정부에 참여하기까지의 좌우 갈등
배운 것 적어도 도량 큰 인물
소절에 구애받지 않는 혁명가의 풍모
임시정부에서 소외당해
3.1 소년단장 최동선과 재혼

제15장
광복의 깃발 들고 27년만에 환국
일제 패망의 날, 중경
제2진으로 12월 초 환국
일제 패망과 조국독립의 의미
환국 순위 양보
소용돌이치는 정국의 한복판에서
비상국민회의 탈퇴 선언
임시정부와 결별, 민전의장 맡아
28년만의 귀향, 대대적인 환영받아
친일경찰에 붙잡혀 수모 당해
3일간 통곡, 그 눈물의 사연
친일파들이 활개치는 기막힌 ‘해방조국’
이현상의 글, 〈혈투의 30여 성상〉

제16장
단정반대 월북 그리고 의문의 죽음
일관된 통일정부수립 노선
테러위협으로 인한 긴장된 생활
4월 9일 북한으로 가다
월북 동기와 배경
북한정권수립에 기여, 국가검열상 취임
월북, 납북 독립운동가들과 만나
재북 독립운동가들과 평화통일기구 만들어
풀리지 않는 ‘퇴장’의 진실
그림자 사라져도 존재는 남아
혁명시인 마야꼽스끼처럼
조국은 그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부록1 민족혁명당 당의 · 당강 · 정책 · 당장
부록2 우리 운동의 새 출발과 민족혁명당의 창립
김원봉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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